장편연재소설 - 무서운마을

저자 - 서영태(전국지역신문협회 대전충남협의회장)

아산시사 | 기사입력 2012/01/17 [17:07]

장편연재소설 - 무서운마을

저자 - 서영태(전국지역신문협회 대전충남협의회장)

아산시사 | 입력 : 2012/01/17 [17:07]

[제3화] 추 적


11월 22일 오후3시

김재진 편집장은 사라진 기자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그러던 것이 조금 전부터는 불길한 느낌에 빠져 들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본부장과 함께 경찰서로 차를 몰아 정태진 회장 사건 담당 형사를 만난다.

「박 형사님, 정태섭 회장 사건을 취재하던 저희 기자 두 명이 행방불명입니다. 분명히 어 제 이 사건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오질 않아요.」

다급하게 묻는 김재진 보다는 연배가 두세 살 높아 보이는 박 형사는 회색 점퍼를 입고 깡마른 스타일의 샤프한 외모를 갖춘 인물이다. 그가 근무하는 경찰서 형사1계는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유지 중 유지인 정태섭 회장부부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조용할 리가 없다. 한참을 분주하게 전화를 받다가 이제 막 김재진의 말을 들은 박 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기자가 취재하다보면 야근을 할 수도 있고, 피곤해서 하루 쉴 수도 있는 거지...다 실종이다 행방불명이라고 민원 넣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들 어제 사건현장에 와서 사진 찍고 이것저것 묻는 것은 봤는데 우리더러 어쩌라구요?」

박 형사가 말은 다 안했지만 큰 사건이 터져 바빠 죽겠는데 자꾸 이렇게 사람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아무 소득 없이 경찰서를 나온 김재진과 본부장은 다시 신문사로 차를 몰아 편집실로 들어간다. 이 신문사를 실제로 운영하는 김재진은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실속파 스타일이라고 소문이 나있다. 자신의 별도 방도 갖지 않고 벌써 10년째 동료 기자들과 함께 한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영세해서 그렇다는 말도 하고 어떤 사람은 워낙 격의 없이 소탈하다보니 그렇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김재진은 자신을 특별히 분류하고 싶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대학 졸업하고 평기자로 시작했으니 영원히 기자로 남고 싶은 자신만의 독특한 다짐이랄까. 그에게는 좀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가령 신문사 기자는 낡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싸구려 볼펜으로 기사를 정신없이 써대야 하는 것, 기자는 배고픈 직업인이라는 뭐 그런 고정관념이 있다. 회의탁자 앞에 앉은 김재진은 취재본부장 이연준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어제 퇴근시간에 신 기자를 봤다고 했죠?」

「네. 제가 퇴근하려는데 신 기자가 야근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건 때문이라면 어디 현장을 취재한다고 않던가요?」

「글쎄, 그런 이야기는 없었고 이 부장하고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만 했죠.」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 신문사 사무국장 진현미가 커피를 두잔 내놓았다. 50대 초반의 아줌마인 진현미는 벌써 11년째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입사 순으로 따지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진현미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감이다. 책상에 붙어있기 어려운 기자들의 어머니처럼 친누나처럼 뒷일을 챙겨주는 역할을 말없이 해왔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성질머리가 한 번씩 폭발할 때는 기자들이 살살 피해 다닐 정도로 독특한 타입이다. 이때는 김재진도 눈치를 채고 살얼음판 같은 편집실을 되도록 빨리 벗어나곤 한다. 벌써 10년째 한솥밥을 먹다보니 피해 줄 때를 아는 것이다. 커피 두 잔을 내려놓던 사무국장 진현미가 대뜸 말을 붙인다. 

  「돌아가는 게 이상해서 신 기자 책상보니까 ‘정태섭 자택 현장 취재’라는 메모가 있던데 거기에 갔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요? 본부장님 저하고 같이 살펴보고 오죠.」 

  두 사람은 다시 차를 몰아 정태섭 회장 저택 정문 앞에 도착한다. 이 저택은 충남·서부지역에서는 꽤 이름난 가야산 줄기 아래 살포시 내려앉은 한 마리 학처럼 하얀색 외벽으로 감싼 2층 규모였다. 거기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멋진 석재로 외벽을 둘러 누가 봐도 사치스럽고 중후한 멋을 한껏 살린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할까. 때마침 석양에 물든 저택은 수많은 석재와 유리 창문들 때문에 황금색 물결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집안을 살펴보는데 검은 색의 육중한 정문은 꽉 잠겨서 흔들림조차 없다. 문틈으로 빼꼼히 안을 살피자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정원을 손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김재진은 큰 목소리로 노인을 부른다.

「영감님, 문 좀 열어주세요. 꼭 좀 물어볼 말이 있어요.」

나무를 다듬던 밀짚모자 영감이 정문 쪽을 돌아본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육중한 정문을 익숙한 솜씨로 열어젖힌다. 바로 앞에서 대면한 영감이 피식 웃는다. 입술 사이로 금이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김재진이 먼저 말문을 연다.

「영감님, 어제 여기서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는데 정태섭 회장과는 어떤 사이십니까?」

갑작스런 질문에도 영감은 그저 두 사람을 노려보고만 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영감이 드디어 입을 연다.

「어디서 오셨나?」

「네. 저희는 신문사에서 나왔는데 영감님은 어떻게 되세요?」

김재진은 호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보여주며 신분을 밝힌다. 영감은 명함을 찬찬히 보더니 말을 건넨다.

「난 이 저택 정원관리해주는 사람이외다. 볼일 다 봤으면 돌아가시게들」

영감이 말을 끝맺자마자 정문을 밀쳐 잠그려는 것을 김재진은 간신히 팔을 집어넣어 제지하고서 말을 잇는다.

「저 혹시 영감님, 어제 이곳을 찾아온 젊은 두 사람 못 보셨습니까. 저희 신문사 기자들인데요.」

「글쎄 난 어제 이곳에 없었다니까. 일주일에 하루만 나와서 일 해주는데 내가 뭘 알겠어? 어서들 돌아가라고.」

이번에는 영감이 정문을 닫아도 더 이상 제지할 명분이 없다. 모른다는 영감한테 더 이상 물어봐야 나올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두 사람은 다시 막막한 가슴을 안고 아무 말도 없이 주차된 곳으로 향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라진 두 기자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오늘만 해도 수십 차례 두 사람의 전화벨을 울렸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김재진은 답답해서 이연준에게 말을 건넨다.

「도대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요?」

「저 노인이 희죽거리는 거 보셨어요? 꼭 우리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영 떨떠름 한데요. 좀 수상해보이기도하고...」 

 입사한지 9년이 되어가는 취재본부장 이연준은 경찰 출신이다. 퇴임할 당시 40대중반이었는데 순경부터 시작해서 15년동안 경찰 밥을 먹었지만 느린 진급 때문에 늘 불만에 차있었다고 한다. 그의 주변에서 나오는 말들을 정리해보면 그가 정직한 경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룸살롱을 운영하는 정 사장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적당하게 향응을 받기도 하고 편의를 봐주기도 했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경찰서장이 부임하면서 그의 행실이 문제가 되었고 시골 파출소로 좌천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경찰을 그만 둔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연준 본부장에게는 사람을 보는 예리한 눈매가 느껴진다.

그가 밀짚모자 노인을 수상하다고 보는 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김재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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