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소설- 무서운 마을

저자 - 서영태(전국지역신문협회 대전충남협의회장)

아산시사 | 기사입력 2012/02/13 [13:10]

장편연재소설- 무서운 마을

저자 - 서영태(전국지역신문협회 대전충남협의회장)

아산시사 | 입력 : 2012/02/13 [13:10]
[제6화] 복 귀

[장편연재소설] - 무서운 마을 

11월 24일 오후 2시

정 회장 저택에 숨겨진 비밀 방에서는 더 이상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두 기자가 실종된 지 4일이 지났고 환각여행을 떠난 지 3일이 흘렀다.
 
이제 막 환각여행에서 현실로 돌아온 두 기자의 몸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다.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온 두 사람은 예전의 그들이 아닌 것 같다. 기자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까칠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그들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이정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처럼 거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체험한 적이 없다.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원초적 공포들이 수 없이 밀려온다.

차라리 꿈 속이라면 깰 수 있을 테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도 없는 공포를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신미연의 경험은 또 다른 것이었다. 남성이 겪을 수 없는 여성으로서만 느낄 수 있는 처절한 두려움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아주 지저분하고 더러운 동물,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괴물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여자로서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비밀스런 문까지 침범했다. 그 수치스러움과 아픔을 뼈저리게 겪으면서도 머리카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고통과 무서움 속에 3일이 지난 것이다. 두 사람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자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뇌에서 내린 명령이 말초신경까지 전달되는 것이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감격에 기뻐서 우는 건지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우는 건지 모르게 두 사람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지 않을 때까지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눈물까지도 다 쏟아 내고 있다. 

이 때 비밀 공간 안에 별도로 만들어진 또다른 비밀문이 스르르 열린다. 두 사람에게로 살며시 다가온 사람은 바로 그 노인이다.
 
이번에도 역시 금이빨을 드러내고 히죽거린다. 노인이 나타나자마자 두 사람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주체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체험이 다시 머릿속을 꽉 차지한다. 심지어 신미연은 바짓가랑이에 또 다시 오줌을 지린다.

노인은 자신의 등장에 꼼짝 못하고 경련까지 일으키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며 매우 흡족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그래 이 무서운 아빠가 왔다. 마음껏 무서워해라. 앞으로 너희들에게는 내 존재 자체 가 악마처럼 느껴질 테다. 너희들의 머리를 두려움으로 꽉 채워 버리는 무시무시한 악마 말이다. 난 그렇게 어둠의 마력으로 너희들을 지배할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에게는 노인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뿔이 달린 어둠의 마왕처럼 보인다.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린 두 사람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다. 어딘가로 숨고 싶어도 그럴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절대 공포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사각머리를 바짝 세운 코브라 앞에 생쥐가 다리 힘이 풀려 도망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나란히 누워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앉은 노인이 말하기 시작했다.

「난 말이야. 예전에 한의원을 운영했었어. 요즘같이 정규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었었지만 윗대부터 계속 이어진 가업이었지. 어느 집이나 가업을 잇다보면 비급이라는 게 있지? 우리 가문의 비급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약초 제조법이었지. 여러 약초를 배합하게 되면 나 만 알 수 있는 하얀 가루를 얻게 되지. 이것이야 말로 악마가 가져다 준 신경독성물질이야. 적당량을 물에 희석시켜 사람에게 투입하게 되면 신경으로 침투해서 뇌까지 올라 가게 되지. 그러면 이 독성물질이 공포심을 유발하는 뇌 부분에 평생 남아 있게 되는 거야. 무시무시한 공포심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이 공포심을 안겨 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거지. 바로 너희들처럼 말이야.」

유난히 광대뼈가 튀어나온 노인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찬찬히 살핀다. 자신이 두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조용하게 말을 잇는다.

「15년 전 그 사고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난 평범한 한의사로 평생을 살아왔어. 그날 밤은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지. 서울 변두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잘 나가던 나는 아내와 함께 대학 다니던 딸 녀석을 데리고 주말여행을 서산으로 내려왔지. 가야산을 끼고 잔잔한 저수지를 따라 구불거리는 도로를 여유 있게 달리고 있었어. 급커브 길을 돌아가는 순간 앞에서 상향등을 켠 차가 내 차선으로 달려오는 거야. 부딪히기 직전 긴장한 나는 핸들을 그만 저수지 쪽으로 돌려버렸어. 브레이크를 본능적으로 밟았지만 차는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어. 그토록 잔잔하던 저수지가 폭탄을 맞은 듯 출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리차를 잡아먹어버렸어. 칠흑 같은 어둠 속 차가운 물이 그렇게 무시무시할 수가 없었어. 난 그때 말이야. 아무 생각이 없더라구. 그저 살려고 손발을 바동거리는 생존본능이 전부였어. 어둠속에서 아무거나 손으로 더듬다보니 운전석에 열어둔 창문이 걸린 거야. 난 본능적으로 몸을 빠져나와 수면위로 올라왔지. 그 순간 아내와 딸이 생각나는 거야.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가다듬고 다시 물속을 더듬거렸어. 그런데 내 차를 찾을 수 없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도 없었어. 그렇게 내 가족이 수장되고 있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후 최 노인은 뼈저린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물속에서 가족을 먼저 살리지 못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했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신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을 외면한 대가는 너무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인의 정신적 고통은 원한으로 바뀌었다. 자기보호본능에서 자신의 탓보다는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단단한 마음으로 굳어갔다.

「그 때부터 난 악마가 되기로 결심 한 거야. 내 가족을 수장시킨 놈에게 복수하기로 다짐 한 거야. 이렇게 만든 세상에 진짜 무서움과 고통을 안겨주기로 마음먹은 거지.」 

노인의 눈가에서는 비정한 악마의 기운이 맴돈다. 결코 사람에게서는 발견 할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다.

「이 신경독성물질은 세상의 어떤 최면보다 강력한 거야. 너희들의 뇌 속에 깊이 파고들어 원초적인 무서움으로 자리 잡을 거야. 내 얼굴만 보면 동공이 확대되고 솜털이 쭈뼛 서고 숨 쉬기 조차 어려울 거야. 감히 내말을 거역할 엄두도 못 낼 거야. 자. 이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너희들의 세상으로 나가는 거야.」 

악마로 변한 노인은 자신이 이 세상을 모두 주무를 수 있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신경독성물질을 이용하여 멀쩡한 사람을 자신의 포로로 만드는 경험은 아주 특별했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쥐락펴락 마음대로 움직이는 인형놀이 마냥 재미를 느낀다. 그 이상으로 희열을 느낀다. 

11월 24일 오후 6시

<주간 충남>편집실에는 실종된 두 기자를 제외하고 4명의 구성원이 전부 모여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가족들이 하루 종일 들락거리며 벌집을 쑤셔 놓았다. 하루 종일 업무가 마비되었다가 이제 조금 수습이 된 분위기다. 김재진이 무겁게 입을 연다.

「그래.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대요?」

다들 눈치를 보느라 말들을 미루다가 사무국장 진현미가 냉큼 말한다.

「아마도 지금쯤 경찰서에 갔을 거예요. 신종된 지 4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참을 만큼 참은 거죠.」 

퇴근시간이 벌써 20분이나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마치 퇴근이라는 일 자체를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태섭 부부 살인사건이 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사무실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기자들은 현장취재를 핑계 삼아 퇴근시간에는 자리를 비우는 게 예사였다. 정말 취재약속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별일이 없을 때도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귀찮아 밖에서 업무를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기자라는 직업이 딱딱하고 피곤할 것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남모를 여유도 가질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현장취재기자와는 달리<주간충남>편집기자는 편집실을 비울 수 없다.

아침부터 빡빡하게 진행되는 편집일은 그 속성상 컴퓨터 앞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곳 편집실은 이재진 편집장을 비롯해 29세의 정혜미 편집기자가 주 편집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무국장 진현미가 각종 전화를 받으면서 편집업무를 보조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재진은 편집장이면서도 운영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자주 외부 출장을 다녀와야 되어서 야간 업무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경쟁 신문사에 비해서 자신이 운영하는<주간 충남> 편집진이 가장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직접 편집을 관장하고 있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편집장이 불안한 신문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아무도 ‘퇴근’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러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고요한 사무실에 갑자기 전화 한통이 유난히 길게 울린다. 사무국장 진현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저 쪽에서는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저 신미연인데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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